2009년 1월 어느 세입자들의 삶터
숫자도 확인 안된 세입자들이 불타 쓰러졌습니다
경찰들에 막힌 세입자들과 가족들이 울며 쓰러졌습니다
카메라를 든 내 손이 부끄러워 자꾸만 미끄러집니다
한국 사회의 영혼은 안전합니까?
용산 참사, 세입자들의 통곡
용산 앞, 이 비극을 전철연 소속의 정삼례 흑석철대위 위원장은 '살인'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했다.
철거민들의 증언도 이어졌다.
"새벽 5시 쯤 돼서 갑자기 망루 위에 컨테이너박스가 2개 올라왔어요. 크레인이 컨테이너박스로 우리 망루를 눌렀어요"
현장 앞에는 철거민들과 그 가족들이 경찰들에 막혀 있었다.
"동지여러분, 저 안에 우리 동지들 시신이..."
말도 마치기 전에 눈물이 흘렀다. 그럼에도 마음 놓고 울 수 없었다.
시신을 어떻게 빼돌릴 지 모르기에, 겹겹이 앞을 둘러친 경찰들 앞이기에.
"왜 못 들어가게 해요 우리가 가족인데! 왜 시체도 안 보여줘! 왜 빼돌려!"
"저기 안에 사람이 있어요... 사람이 있다구요...왜 못 들어가게 해요..."
"우리가 경찰 부르면 안 와요. 용역이랑 조합에서 부르면 득달같이 달려와요. 우리가 뭘 믿어야 해요?"
"인터뷰 안 해요... 가세요. 우리 남편이 (생사가)확인이 안 됐으니까 좀 가세요...
언론들 다 똑같애.. 맨날 뉴스엔 과격시위 했단 거만 보도하고 우리 얘긴 안 내보내고..
언론에선 또 조작할 거야.... 또 우리가 불냈다고 뒤집어 씌울 거야...."
"시위 말고 대화로 풀라고? 난 지금까지 조합 얼굴도 못 봤어. 걔네가 한 번이라도 대화하자고 했으면 이렇게 안 됐어!"
" 재개발 하는 데는 다 마찬가지에요. 난 신계동에서 왔어요. 160일째 구청 앞에서 천막 치고 농성하고 있어요! 수도도 가스도 없는 데서!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어!"
"우리가 돈을 달래 뭐를 달래... 살 집을 뺏었으면 집을 주고, 살 길을 뺏었으면 살 길을 줘야지..."
시신을 태운 구급차는 가족과 이웃들이 아닌 경찰의 엄호 속에 빼돌려지듯 뒤쪽 골목으로 나갔다.
아무도 그 시신이 누구인지,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취재하려던 카메라 기자조차 전경들에 밀려 넘어졌다.
차를 쫓아가려던 한 세입자는 전경들에 제지당하고 차를 놓친 후 결국 도로 한복판에 쓰러져 통곡했다.
용산 참사,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나
용산역 건너편 국제빌딩 주변 재래시장과 상가 밀집지역인 용산 4구역은 2006년 4월 20일 도시정비지역으로 지정 고시된 후, 2007년 2월 28일에 주로 땅(가게, 집) 주인들로 구성된 지주조합이 설립됐다. 지주조합은 같은 해 4월 13일 재개발사업시행인가 신청을 해서 인가를 얻고 10월 19일 총회를 통해 이주 및 주거 이전비 지급의 건, 철거업체 선정 등을 결정했다. 보통 재개발지역에서 5~10년 걸리던 일이 용산4구역에선 단 8개월 만에 빠르게 처리됐고, 그 과정에서 세입자들은 철저히 배제되었다.
조합원들의 이주비는 총회에서 결정 되었지만, 세입자들은 재개발 추진상황이나 세입자 보상내역 등을 전혀 모르고 있다. 사업시행인가 신청 때 그 내용들을 세입자들에게 공개해야 하지만 용산4구역은 그런 절차가 없었고 용산구청에서는 법적 하자가 있는 상태로 인허가를 내줬다. 김대원(36) 씨는 “구청, 시청 등 관련 기관들에 수없이 민원을 넣었지만 다들 ‘소관이 아니다’며 서로 책임만 떠넘긴 채 나몰라라 해요”라고 한탄했다.
이들의 요구는 공사기간 중 장사를 하거나 살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주는 것, 즉 '가수용상가, 임시수용시설'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그들을 향해 용산구청은 '떼거리를 부리는 주민은 주민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팻말로 화답했다.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찾아가 보았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에 답한 정당은 민주노동당 뿐이었다. 민주노동당 용산구위원회는 세입자주거권대책위를 꾸려 공동 대응을 도모해왔다. 그러나 전국을 몰아친 '뉴타운' 광풍을 이겨내기에는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세입자들의 '과격 집회',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나
40년째 이 지역에서 살아왔다는 한 주민이 말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어. 적어도 100을 벌었으면 20은 세입자들 살 길을 마련해 줄 수 있을텐데... 그런 것도 없이 나가라고만 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
상황 본 후배들 말로는 밤에는 잠잠했는데 갑자기 새벽 5시부터 크레인을 올리고 난리가 났다는 거야. 특공대 투입하니까 사람들이 막는다고 화염병을 던지는데 물대포를 쏘고 그러다보니 도리어 불이 제 몸에 붙고 그런 거 같아. 무리하게 특공대 투입하고 물대포 쏘고 그러니까 상황만 크게 된 거라고 다들 그래."
쓰레기장으로 변모한 시장과 을씨년스럽고 황폐한 골목을 가리키며 그는 말했다. "여기가 원래 정말 서민들만 모여 살아도 사람들이 많아서 장사도 웬만큼 잘 됐던 데야. 재개발하고 나서 이렇게 된 거지. 땅주인들이야 다 빠져 나간다 해도 여기서 원래 장사하고 살던 사람들은 막막한 거지.
사실 세입자들 빨리 나가라고 용역들이 별 흉한 짓도 다 했어.
이런 걸 좀 기사로 잘 써 줘. 없는 사람들, 서민들 못 살게 해서 이런 결과 나온 거라고... "
세입자들이 아닌 새 건물만 둘러보고 간 한나라당 의원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국회의원들이 잠시 현장에 얼굴을 비추었다. 보좌관들을 대동하고 온 그들은 경찰만 있는 빈 골목을 유유히 지나갔다. 경찰 너머 통곡하는 시민들을 그들은 외면했다. 골목 안 드문드문 보이는 주민들은 그들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한나라당의 책임소재를 묻는 여론에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 대표는 불쾌감을 표시하며 "그게 왜 한나라당 책임이냐. 그런 현실에 안 맞는 논리로 고집 부리면 곤란하다."고 했다.
향후 대응에 대한 질문에는 "일단 진상 파악을 하고, 그 다음에 책임을 져도 늦지 않다. 일단 진상이 분명해야지. 그 다음에 책임을 물을 게 있다면 뭐..."라며 애매한 답만 했다.
원내 과반을 차지한 거대 여당의 '책임의식'은 참으로 왜소했다.
이후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새로 지은 주상복합 건물 앞에 이르러 그랜저를 타고 사라졌다.
덧...용산역 앞에서 7시 추모 촛불집회를 개최한다는 발표 이후, 4시 반 경 아이파크 몰 쪽에서는 급하게 이러한 현수막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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